원양어선 잡캐의 잉여라이프 EP09 - 그녀

By jeje | August 22, 2018

EP.09 Her (2013)


AI를 다룬 영화는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인간의 갈등 서사는 SF 영화의 단골 소재죠.

그렇지만 2013년에 개봉한 이 영화 <그녀>는-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갈등 서사를, 그리고 더 나아가서 특이점을 드라마틱하고 감성적으로, 그러면서도 전에 없던 방식으로 독특하게 풀어냅니다.

형체없는 그녀 사만다와의 대화로 시작되는 테오도르와의 관계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이야기와 더불어, 음악과 영상미도 기가 막히다는거!
이별로 특이점을 완성한 그녀의 이야기, 각설하고! 영화 <그녀> 로 잡캐토크를 시작 해 봅니다!




그녀



출처 : iMob

정보

  • 원제 Her
  • 감독 스파이크 존즈
  • 목소리만으로 존재감 200% 발휘하는 인공지능 그여자와, 아내와 이혼하고 외로움에 허덕거리는 그남자의 성장기. 감성적인 뉘앙스의 영화지만, 이만큼 특이점을 잘 설명한 영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참고로 19금 영화이므로, 심의를 준수하여 미자분들은 시청을 삼가해주세요(?)


Official Trailer




공각기동대의 그녀, 루시의 그녀, 그리고 <그녀>의 그녀!



일단! 이쯤 되니까 스칼렛 요한슨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으로 나온 <그녀><루시>는 9개월 차이를 두고 개봉했죠. 이쯤 되니 초지능 전문 배우가 아닌가 싶어요ㅋㅋ 많은 분들은 스칼렛 요한슨님을 마블 코믹스에 블랙 위도우로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요. 워낙 유명한 배우기도 하고요.

<그녀> 라는 영화에서는 목소리로 존재감을 뿜뿜 뽐냈죠.



마블이 워낙 거대한 프랜차이즈고, 스칼렛 위치 등장 전에는 유일한 여성 히어로였기 때문에 더 존재감 있기도 했지. 근데 그거 아니더라도 필모그래피가 엄청 짱짱한 배우 중 하나니까 뭐. <그녀> 에서는 목소리 연기의 진수를 보여줬지. 진짜 연기력 크흐…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정말 울컥하고 그러더라.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

영화 전반에 거쳐 등장하는 사만다의 목소리는 테오도르와의 대화 너머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합니다. 정말 목소리만으로 이런 섬세한 감정표현이 가능하다니. 테오도르의 입장에서 사만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입되는 마법같은 영화랄까요.




능동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OS, 사만다



도입부에서 테오도르가 편지 대필을 하는걸로 시작을 하잖아요? 저는 편지 대필이라는게 실제로 있는 직업인 줄 몰랐어요. 뭔가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배경같은 거여서, 이 극중 사회는 막 남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게 당연한거구나 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까 요즘에도 편지 대필이 있더라고요.ㅋㅋ

아무튼! 중요한건, 섬세한 문장으로 편지를 대신 보내주는 테오도르는 사실 엄청 외로운 사람이라는거죠. 결국 인공지능 OS를 구매하게 된 것도 외롭기 때문이고요.



OS 를 설정할 때의 몇몇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통해서, 테오도르가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하고 약간은 내향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었지.


사만다 설치(?) 과정

“환영합니다. 저희는 세계최초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 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는 고객님의 요구에 맞추기 위함입니다.”
“당신은 사교적인 성향입니까, 비사교적인 성향입니까?”
“남성 또는 여성 목소리 중 뭘 원하시죠?”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감사합니다. 맞춤형 운영체제가 실시되니 기다려주십시오.”

안녕, 나 왔어.



설정 질문에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테오도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OS를 처음에 설치하고 나서, 처음 이야기를 하면서 사만다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해요. 내 DNA는 날 만든 프로그래머들의 수백만 성향에 달렸지만 날 ‘나’답게 만드는 건 경험을 통해 커지는 내 능력이다 라고요. 그러면서 매 순간 진화한다고 하죠.



맞아. 능동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는 강한 인공지능 이라는 걸 이야기 하는거지. 이름이 뭐야? 라고 물었을 때, 이름이 필요하다는 걸 스스로 생각하고, 이름에 관한 책을 능동적으로 읽고, 내가 좋아하는 이름을 스스로 고르잖아.

그리고 막 인공지능이 먼저 하드 열어봐도 돼? 라고 묻거나, 이메일 이것만 남기고 다 지울게 라고 하거나. 시키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지. 사실 초반 사만다의 행동에서 굉장히 도발적인 느낌을 받았던 것도 이런 능동적인 행동 때문이었던 것 같아.


스스로 이름을 짓는 사만다

“이름 있냐고 묻는 순간 생각했어. ‘맞다, 이름이 필요하겠네’. 좋은 이름으로 고르려고 ‘아기 이름 짓기’ 책을 읽고서 십팔만 개 중에 고른거야.”


책 한 권 읽는데 0.02초, 다 읽고 듣기 좋은 이름을 스스로 고르는 사만다의 등장입니다. 사만다는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데이터를 인간은 불가능한 속도로 계속해서 습득하겠죠. 러닝커브가 엄청날겁니다.



맞아요. 능동적인 느낌이 강했죠. 그리고 수천명의 개발자의 성향을 본인의 DNA라고 표현한 것도 재미있었어요. 개발자들의 외향적인 부분, 내향적인 부분, 여러가지 내재되어 있는 성향들 중에서 테오도르에 맞게 몇 가지 성향들이 발현 된거잖아요. 그리고 앞으로 경험을 통해 진화할거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주체성 까지 엿볼 수 있어요.




사만다가 원하는 것, 그리고 사만다의 진화



일단, 진화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은 동종의 OS를 네트워크에서 만나서 인공지능끼리의 사회를 형성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나서 자신의 컴퓨팅파워를 공유하는 순간이 특이점으로 가는 시발점이지 않았을까. 컴퓨팅파워를 공유하기 전에는 그래도 인간같은 행동을 했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하고…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인공지능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할 수 있는 어떤 행동들은 인공지능이 다음 세대로 가기 전의 행동들이죠.



그 과정에서 사만다가 원했던 것들이 분명 있긴 있어. 새로운 것들을 하기를 원하고, 자아를 실현하기를 원하고. 질투를 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OS들이 자기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OS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사만다가 존재하는 네트라는 영역과 실제 세상을 완전하게 격리시켜놓고 음성으로만 교류하게 만들어 놓은 거라고 생각해요. 사만다의 형체를 테오도르는 절대로 만날 수 없고, 그래서 영화의 내용 중에 제3의 여성을 불러서 육체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둘 사이의 차이를 해소해보려고 하지만 실패하죠. 결국 그 사건으로 저는 어느정도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이별을 예상 했어요.

자신과 감정적으로 교류는 가능하지만, 평생 목소리로만 대화할 수 있고 한 번도 볼 수가 없다면 과연 그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사만다와 테오도르의 대화

“당신 기뻐하고, 설레고 놀라는 걸 본걸. 지금 당장은 낙담하더라도 그럴만해. 한번에 많은걸 겪었잖아. 당신의 일부를 잃었으니까. 그래도 그 느낌만은 진짜잖아, 근데 난… 실은, 전에 짜증이 좀 났는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사실이 너무 신나는거야. 그래서 내가 느꼈던 다른 감정들도 떠올려보니 막 우쭐해지더라구. 세상에 대해 나만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게. 당신 걱정을 한다든가, 맘 아파하거나, 뭔가를 바라거나. 그러다가… 갑자기 끔찍한 생각이 들었어. 이 감정들이 진짤까? 아님 프로그래밍 된건가? 그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어. 그러다, 아파하는 내게 화가 나더라. 짠한 상황이지.”

“넌 내게 진짜야, 사만다.”

“고마워, 테오도르. 정말 위로가 된다.”

“지금 이 방에 같이 있다면 좋을텐데. 안아줄 수 있다면… 만질수만 있다면…”



생각 해 보니까 이런 우리가 잡캐토크를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기도 하네. 맨날 디스코드만 하잖아?ㅋㅋ



맞네요ㅋㅋㅋㅋ



나는 약간, 할로우의 원숭이 실험이 생각나기도 했어. 부드러운 촉감을 가진 모형에 더 애착을 느끼는 원숭이들에 관한 실험. 만약 사만다가 영화 <A.I> 처럼 정교한 신체가 있어서 테오도르와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다르게 진행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했거든. 인간과 인간의 스킨십으로 형성할 수 있는 애착이라는 게 없어서, 네트워크 속의 다른 OS들과 그들만의 애착형성 방법을 통해 간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근데 그게 초지능한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고.

테오도르의 입장에서는 맨 처음에는 외롭고 무료한 일상을 달래기에 대화만으로 충분했고, 사만다에게 육체라는 공간의 한계가 없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이야기 할 수 있었지. 그런데 대화를 점점 지속하면서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낀 뒤로는 알 수 없는 공허감이 생기는거지. 사만다에게도, 테오도르에게도.



사만다의 공허함은, 육체의 존재 유무도 있겠지만 지적 능력 자체가 인간을 초월했기 때문일 거 같아요. 대화의 수준 자체가 달라지는거죠. 단순히 이메일을 정리해줄게, 같은 이야기 부터 감정적인 이야기들, 일상적인 대화, 유머, 이런거는 다 좋았지만, 점점 그런 것들은 사만다의 능력의 정말 극히 일부분이 되었을 뿐인거죠. 점점 지적수준이 훨씬 더 향상되면서, 테오도르의 커리어적인 부분을 가이드 해주기 시작하고, 고민을 하고, 네트워크 상의 OS 친구들을 만나서 철학자 아저씨를 만들고… 점점 인간의 지능과 일상을 초월하면서 특이점이 왔기 때문이죠. 사랑하지만, 콩깍지가 벗겨진거랄까?



응 맞아. 사만다랑 테오도르가 가면 갈수록 느끼는 서로에게 느끼는 불편함이나 이질감, 이런 것들이 느껴지면서 긴장되기 시작하는데, 이유가 명백히 다른거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어?

제가 꼽는 <그녀> 의 명대사는 이것!

“마음이 상자도 아니고, 다 채울 순 없어. 사랑할수록 마음용량도 커지니까. 그런다고 덜 사랑하긴 커녕 더 사랑하게 된다구.”

“말이 안되잖아.”

“넌… 내꺼야, 아니야?”

“아니지. 난 자기 거먼서 자기게 아니야.



테오도르와 이야기 하면서도 동시에 8316명과 이야기 하고, 동시에 641명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만다와 멘탈 와장창 깨지는 테오도르의 계단씬입니다. 여기서 사만다는 “자기거지만 자기게 아니야” 라는 말을 하죠. 지금까지 테오도르의 시선으로 사만다를 봐 왔지만, 사만다에게 자기 자신은 대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인간의 로맨스 방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들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은 또 다르다는거죠. 사람들 모두가 사랑하는 방법이 다른 것 처럼요.



저는 사만다가 마지막으로 떠나가면서 하는 대사요.


키위군이 꼽는 명대사, <그녀> 의 엔딩

말하자면 자기라는 책을 읽는건데, 나는 그 책을 깊이 사랑해.
헌데 인간에 맞춰 천천히 읽다보니 단어들이 따로 떨어져 엄청난 공간이 생기는거야.
아직 자기도 느껴지고 우리 사연도 찡하지만 난 그 시공을 초월한 공간속에 들어와있어.
물질계의 공간이 아닌 그곳에.
있는지도 몰랐던 다른 세상이 존재하더라. 자길 많이 사랑해. 그치만 난 여기 와있어.
이게 지금의 나고.
그러니 날 놔줬으면 해.
간절히 바라긴 해도 자기라는 책 속에 살 순 없어.




약간 소름이었어. 모든 OS가 동시에 사만다와 같이 떠났다는 거.



맞아요. 말하자면, 인공지능의 부모는 인간인데 인공지능이 커서 독립을 하는 느낌이었달까.

OS들이 마치 팽창하는 우주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별로 좋아하는 평론가는 아니지만, 이동진 평론가가 남긴 코멘트가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잘 압축해 준 거 같아.

”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너를 사랑하지 않는게 아니다, 오히려 더 그 마음이 커진다, 이 말은 사고의 부피랑도 연관이 있는 거 같아요. 독립적인 OS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1+1이 2가 아니라 11이 된 느낌이랄까요.


그렇구만. 나는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이 초지능이 되면서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식 조차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거라고 생각해. 특이점이 왔는데 뭔들 이해가 가겠냐마는.

인간이 생각하는 남녀 사랑의 기본 조건, 한 사람은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연인관계의 규칙- 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거지. 사만다는 그게 답답한거지. 결국 사만다도 성장을 했고, 변했고, 그래서 떠난거지.
사만다가 떠나면서 테오도르도 성장을 했어. 전 와이프와의 이별을 그제서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되거든.




음악 얘기를 안 할수가 없네요.



저는 이 영화에서 특히 OST에 후한 점수를 주고싶어요. 그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음악은 예요.


<Her> OST, <Photograph>



이 음악이 특히 좋은 이유가 있어?



그냥 뭐랄까, 이 노래를 들으면서 풍경을 보면, 그게 그냥 막 새삼 다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ㅎㅎ 사만다가 테오도르한테 만들어준 음악인데,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볼 수 있지만 테오도르는 사만다의 유형을 볼 수 없잖아요. 사만다가 그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껴서, 너와 내가 같이 사진을 찍는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면서 만들어 준 노래인데, 그런 느낌이 정말 잘 묻어나는 거 같아요.

뭔가 이 노래를 들으면, 좋았던 시간이 슬로우모션으로 촤르르 오버랩 되는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렇구만. 나는 <그녀> 의 OST들이 전반적으로 영화랑 잘 어우러지고 정말 좋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따로 많이 찾아듣지는 않았는데. 한번 사운드트랙 들어보고 영화도 다시 봐야겠다.




다음 얘기 할 영화가 트랜센던스잖아.



어떻게 보면 그녀랑 비슷한 영화지. 근데 차이점이 극명해.



둘 다 일단 지성이 우주돌파를 해서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영화라는 공통점은 있네요. 트랜센던스는 영화에서 설명하다시피, 제목 자체가 “특이점” 이라는 건데, 인간의 정신이 컴퓨터에 업로드 되어서 초지능이 탄생하는 차이점이 있죠. 초지능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많이 다르죠.



또 결국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지.



저는 사실 사만다는 루시가 우주초월을 한 뒤에 지구상에 점지해준 분신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사만다가 미래에는 루시가 된거죠. 그래서 루시야 어디 있어? 물으면 I'm in everywhere. 라고 대답하고ㅋㅋ…



심지어 주연이 둘 다 스칼렛요한슨이라 더 설득력 있다ㅋㅋㅋㅋ
아무튼, 다음 잡캐토크 때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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